[보도자료] ‘의사 조력자살’ 돌봄 없는 사회의 퇴장 권고인가 [왜냐면]
‘의사 조력자살’ 돌봄 없는 사회의 퇴장 권고인가 [왜냐면]
입력2025.06.09. 오후 5:12 수정2025.06.09. 오후 5:16
김대균 |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권역별호스피스센터장“모든 인간은 존엄하다.” 이 선언은 세계인권선언의 첫 문장이자, 우리가 인간답게 살아간다는 믿음의 시작점이다. 그러나 병상에 홀로 누운 말기 환자를 떠올리면, 이 말은 질문으로 돌아온다. 과연 존엄은 누구의 몫인가?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의사 조력자살’ 제도에 대한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극심한 고통을 겪는 환자가 자신의 생을 마감할 권리를 갖는다는 주장은 명분이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반드시 물어야 할 것이 있다. 그 선택은 정말 자율적인가? 혹시 그 선택이, 사회가 제공하지 않은 돌봄의 빈자리를 혼자 감당한 결과는 아니었는가?법철학자 손제연은 인간 존엄을 개인이 고유하게 지닌 가치로 보지 않는다. 그는 존엄을 사회가 부여하고 유지해야 할 ‘지위’로 본다. 마치 과거 귀족에게 부여되던 존귀함(dignitas)처럼, 오늘날의 존엄도 타자의 인정과 돌봄 없이는 성립하지 않는다. 이는 곧 존엄이 타자에 의해 지켜질 수 있어야만 실질적인 의미가 있다는 뜻이다. 실질적인 자율성이 결여된 조건에서는, 개인의 존엄을 표방하는 표현이 오히려 사회적 책임 회피의 정당화로 기능할 위험이 있다.그래서 “현재 부족한 가정호스피스 제도를 확대하면 조력자살 없이도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라는 식의 주장은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결론일 수 있다. 한국 사회는 지금 가족 중심의 돌봄 구조가 해체되고 있다. 노인 5명 중 1명은 독거 상태이며, 가족이 있다고 해도 생계를 위해 가족들은 낮에 집에 머물 수조차 없다. 이런 조건을 유지하면서 말기 환자가 집에서 존엄하게 죽음을 맞이한다는 구상은, 사실상 현실을 외면한 ‘그림의 떡’이 아닐까? 천장을 바라보며 온종일 홀로 누워 있는 환자에게 가정호스피스는 제도가 아니라 고립의 또 다른 이름일 수 있다.자본주의 사회는 생산성과 효율성을 기준으로 인간을 판단한다. 그 틀에서 돌봄은 비가시적이고 비생산적인 노동으로 밀려난다. 돌봄 노동의 상당수는 여성, 가족, 이주노동자에게 무급 또는 저임금으로 전가된다. 국가는 점점 더 그 책임에서 후퇴한다. 이 구조 안에서 존엄은 모두에게 주어지는 권리가 아니라, 감당할 수 있는 자에게만 허락된 조건부 지위가 된다.의사 조력자살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돌봄이 해체된 조건에서 ‘죽음을 선택할 자유’는 과연 자유일까? 이는 자율이 아닌 사회적 퇴장의 권고일 수 있다. ‘존엄한 죽음’은 반드시 ‘존엄한 삶’ 위에서만 성립할 수 있다. 존엄한 삶이 제공되지 않는다면, 그 죽음은 존엄이 아니라 비용 절감의 수단일 뿐이다.우리는 이제 선언이 아닌 구조를 바꿔야 한다. 존엄을 보장한다는 말이 진실된 의미를 지니려면, 모든 이가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이 선행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가정호스피스 제공기관의 공공 확충과 함께 24시간 방문형 전문 간병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 독거 말기 환자들이 홀로 방치되지 않도록 의료적, 심리적, 사회적 돌봄이 가능한 마을 단위 기반의 커뮤니티케어(지역 통합 돌봄) 센터의 운영도 필요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현실화될 수 있도록 돌봄 노동에 대한 국가의 재정 책임 강화가 뒤따라야 한다.존엄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구성되는 것이다. 그리고 죽음은 더 이상 개인과 가족만의 몫이 아닌, 공동체가 함께 책임져야 할 새로운 패러다임의 일부다. 누구도 홀로 고통 속에 남겨지지 않는 사회야말로,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는 말이 비로소 진실이 되는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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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s://www.hani.co.kr/arti/opinion/because/120182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