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똥별, 찰나의 시간에 마주한 우리] 1. 말하기 싫어요! 2024.04.03

“말하기 싫어요!”

사회복지사 곽희선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2014년부터 호스피스 병동에서 근무하며 정말 많은 환자와 보호자들을 만났다. 저마다 사연이 없고 아픔이 없는 분들이 없었고, 특히나 관계 형성이 더 두터웠던 환자가 임종하고 나면 얼마 동안은 생각이 나곤 했다. 하지만 사람인지라, 현실과 근무에 치우치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 틈이 없이 마치 기계적으로 근무한 적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런 때에, 내 마음에 다시 초심을 찾아주었던 한 환자가 있었다. 어느 날 병동 스테이션에서 간호사 선생님들과 대화하며 근무하는 중에 한 남자 학생이 가방을 메고 병동으로 들어왔다. 당연히 어느 환자의 보호자인 줄 알고 응대하려고 했는데, 입원하려는 환자였다. 그 당시 대부분 입원하는 분들은 어르신이 대부분인 상황이었고 혼자 입원 절차를 밟으러 온 환자도 처음 본 터라 다소 놀랬었다.


당시 27살이었던 환자는 대학교 졸업 후 폐암으로 투병 생활을 하게 되었고, 글 쓰는 걸 좋아하여 자신의 투병일지를 블로그에 작성하고 잡지에 글도 올리는 등 사색하며 글을 정리하는 것을 좋아하였다. 입원 당시 모든 팀원이 초기 평가를 위한 상담을 진행하는 것이 당연하기에 나 또한 환자에게 바로 면담하기 위해 다가갔는데, 그 당시 면담을 앞둔 환자가 많이 밀려서 나도 모르게 면담이 아닌 궁금한 질문에 대답하는 형식으로 진행하려 했던 모습이 있었던 것 같다. 눈치를 챈 환자는‘저 지금 선생님과 말하기 싫어요’라고 분명하게 얘기했었고, 이렇게까지 직접적으로 면담을 거부한 경우가 없던 터라 속으로 많이 놀랐고 자존심도 상했었다. ‘아, 말하기 싫었구나. 알겠어요. 다음에 보아요’라고 말하고 병실을 나왔다. 그 뒤로 회진 시에만 살짝 얼굴 보며 눈인사 정도만 나누고, 보호자 면담만 진행하려 준비하던 중 며칠 뒤 환자가 먼저 상담실 안으로 찾아왔다. 환자는‘그때 많이 미안했다, 처음 온 터라 마음이 뒤숭숭했는데, 물어보는 질문에 답을 하기가 괜히 심술이 났었다’라고 하며 먼저 사과를 하며 마음의 문을 열어주었다. 되레 내가 더 미안해진 순간이었고 그 당시의 내 태도에 대해 사과하며 훈훈하게 마무리하였고, 그 후 환자는 친한 누나에게 대하듯 편하게 대하며 지내게 되었다. 환자는 병동 간호사 선생님들과도 친하게 지내며 두 달 동안 병동 생활을 하였고, 집으로 퇴원하여 외래를 오고 다녔고, 외래진료를 보고 난 후에도 꼭 병동에 들러서 병동 선생님들과 인사도 한 번씩 나누고 갈 정도로 치료진과 매우 친해졌었다. 어느 날 어김없이 외래진료를 보고 씩씩하게 병동에 들러 인사를 왔던 환자는‘아마 다음에 입원해야 할 거 같아요’라고 담담하게 말하고 웃으며 인사를 나누고 집에 돌아갔다. 그다음 날, 환자는 집에서 객혈 후 응급실로 실려 왔다고 하였고, 당일 사망하였다. 주말이라 쉬는 날이었는데, 그 친구의 부고 소식에 친구를 만나러 가던 버스에서 눈물을 엄청나게 흘렸다. 그 환자와 보냈던 많은 프로그램과 면담하며 터놓고 속마음을 표현한 환자의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면서 환자나 보호자를 대할 때의 처음 마음가짐을 다시 생각나게 해준 고마운 환자이며 남동생이었다.


호스피스 병동에 근무하면서 사람의 삶의 희로애락에 대해 회의를 느낀 적도 있고, 보람을 느낀 적도 있고, 슬픈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여러 가지 고됨과 생각이 들 때가 있지만, 막상 환자와 보호자를 만나면 친근하고 편한 느낌의 사회복지사로서의 기억으로 남고 싶다는 생각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런 다짐을 가지고 내일도 환자를 보러 병동에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