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똥별, 찰나의 시간에 마주한 우리] 4. 나에게 호스피스란 2024.04.24

나에게 호스피스란

간호사 유희영

인하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


4년 전 제 나이 27살, 처음 호스피스 병동에 오게 되었습니다. 갑작스러운 부서 이동이었고 교육을 사전에 받아두기는 했지만 호스피스에 대한 가치관 정립이 되지 않은 상태로 근무를 시작했습니다.

근무 첫날, 수시로 울리는 호출 벨로 정신이 없고 태어나서 가장 많은 모르핀을 투약한 날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비치된 모르핀을 선사용 후 마약 슬립 지를 출력하여 약제팀에서 불출 받아 채우고 무한 굴레에 빠진 듯한 느낌이 기억이 납니다. 한동안 투약 중심의 업무 적응에 몰두하다가 환자, 보호자와 상담을 시작했습니다. 이전에 정신과 병동에서 근무했었기 때문에 상담에는 큰 어려움이 없을 거라 자만했었나 봅니다.


상담에서 마주한 환자, 보호자의 이야기는 참 무거웠습니다. 일평생 가족만을 위해 살아오신 아버지가 말기 암 진단을 받은 이야기, 가족을 챙기느라 본인의 건강은 뒷전으로 하고 살아오신 어머니가 말기 암 진단을 받은 이야기, 긴 결혼 생활 끝에 어렵게 얻은 자녀가 말기 암 진단을 받아 노부모가 간병하는 이야기 등 수많은 가슴 아픈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정신과에서 근무했을 때는 죽고 싶은 환자를 살게 하는 희망적인 말을 전했다면 호스피스에서는 살고 싶은 환자에게 죽음에 대한 말을 한다는 게 마음이 아팠습니다.


처음에는 형식적인 위로의 말만 전할 수 있었습니다. 많이 힘드셨겠어요, 마음 아프시죠, 저희가 도와드릴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언제든 말씀해주세요. 등.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호스피스 병동에서 근무하면 팀원들의 소진이 큰 화두입니다. 처음에는 임종으로 인한 소진을 의미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간호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무기력으로 인한 소진도 무서웠습니다. 나의 이런 말 한마디가 과연 진정으로 환자와 보호자에게 위로가 될까 싶었습니다.


그때 호스피스 병동에서 오래 근무해오셨던 선배 간호사 선생님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선생님들은 때로는 그분들의 자녀로, 그분들의 형제자매로, 그분들의 부모로 그분들을 위로해 주셨습니다. 단지 의료진의 입장에서 환자와 보호자를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와 보호자의 가족이 되어 위로해 주셨습니다. 제가 의식하고 있던 ‘위로’를 위한 위로가 아닌 진정한 ‘마음’을 나누고 계셨습니다. 복잡하고 민감한 가정사, 예민하고 경계심 있는 성격 등 많은 어려운 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우리 호스피스 병동에 오신 모든 환자와 보호자들은 결국 마음을 열고 어려운 임종 과정을 함께 극복해나갔습니다.


처음 호스피스 병동에 왔을 때 저는 약점투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린 나이, 간호사로서 많지 않은 임상 경력, 호스피스와는 다른 성격의 부서 근무, 눈물이 많은 성향 등 너무 많은 부족한 점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호스피스는 이런 저도 함께 품어주었습니다. 어린 나이 덕분에 그분들의 자녀로, 형제자매로 함께 할 수 있었고, 정신과 근무 경력 덕분에 정신 질환을 동반한 환자를 잘 돌볼 수 있었고, 적당한 임상 경력 덕분에 호스피스에 대한 편견 없이 온전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고, 눈물이 많은 성향 덕분에 마음에 혼자 쌓아두고 소진되지 않고 함께 눈물 흘리고 풀 수 있었습니다.


가끔 호스피스 병동에 대해, 호스피스 간호에 대해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간호사가 연주도 해? 노래도 해? 꽃꽂이도 해? 요리도 해? 그림도 그려? 목욕도 해? 미용도 해? 네일 케어도 해? 무슨 간호사가 그런 일을 하냐는 말씀도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호스피스에 와서 간호에 대한 제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우리가 중요하게 강조했던 진정한 ‘전인 간호’란 이런 간호가 아닐까 하고요.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고 배워야 할 것도 많지만 호스피스에서 성장할 간호사로서의 제 모습이 기대됩니다. 호스피스에서 느낀 이 충만함을 많은 말기 암 환자, 보호자 분들에게 나눌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애정 어린 마음으로 삶과 죽음의 사이에서 오늘도 힘을 내는 환자와 보호자들과 함께, 그 여정을 걸어가는 간호사로서 일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