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똥별, 찰나의 시간에 마주한 우리] 8. 생일 케이크 촛불 앞의 사람들 2024.05.13

생일 케이크 촛불 앞의 사람들

간호사 심문주

동국대학교 일산병원


어느 날 누군가가 나에게 물었다. 그곳에서 어떻게 일하냐고, 그곳에서 일하면 힘들진 않냐, 정확히 그곳이 어떤 곳인지 알고 하는 질문일 수도, 아무것도 모른 체하는 질문일 수도 있다.

그날 이후 나에게 스스로 물었다.


나는 왜 이곳에서 일하는가…. 이곳에서 나는 무엇을 하는 존재인가…. 그러고 한동안 나의 일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 노력했다. 모든 순간에 내 감정을 앞세우지 않고 그냥 다른 사람의 일처럼 보려 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땐 다시 누군가가 나에게 묻는다면 그 질문에 내 생각으로 제대로 대답해 주고 싶었다.


나는 간호사로 일한 지 십 년이 넘어가고 있는 바로 그곳, 호스피스 병동의 간호사이다.

학교에 다닐 때 가족의 형태는 다양화되어 가고 있고 앞으로 더 다양해질 것이라 배웠다. 학생에서 사회인이 되고 난 후 정말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만나게 되었다. 이혼, 재혼, 다문화, 사실혼, 1인 가족, 외국인 그리고 가족관계증명서에만 존재하는 가족이라는 이름의 사람들의 모임 혹은 가족관계증명서조차 증명해내지 못하는 진짜 가족들까지. 이곳에서 일하며 더 다양한 가족의 형태들이 있으며 가족들의 형태는 중요하지 않다는 걸 직접 몸으로 느끼고 있다. 수많은 가족 그리고 날 사랑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지만, 오롯이 병의 고통과 죽음의 두려움을 맞이하는 건 아픈 이 혼자였다. 그 고통 앞에선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관심과 노력으로 혼자가 아닌 가족이, 의료진이 있어 견딘다고 말하기도 한다. ‘호스피스’라는 단어를 들으면 마냥 무섭고 어두운 곳이라 많은 사람들은 생각한다. 하지만 막상 호스피스 병동도 사람들의 모임이고 작은 사회 속이다. 매일 불편한 곳이 없냐 물어보는 의사 간호사들, 내 사람들도 하기 힘든 더 개인적인 모습들까지 직접 해결해 주는 보조활동인력과 자원봉사자들,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 생각해 지지해 주는 사회복지사, 당신의 곁에 있다는 존재만으로 위로받는 종교인까지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작은 사회인 거 같다. 그래도 무거운 분위기일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실제 여긴 하루가 멀다고 음악요법 시간엔 간드러진 트로트 소리에, 태어남에 감사하는 생일 축하 인사, 새해의 시간과 또 무사히 돌아온 명절을 같이 즐길 수도 있는, 일반병동의 아픈 이들이 생각할 수 없는 분위기의 흥겨운 시간도 같이 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호스피스 병동은 누군가의 삶을 조금 더 가까이 보게 되게 만드는 곳인 거 같다. 조금 내려놓고 본인의 얘기를 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아빠가 그렇게 애틋하지 않아요. 가족들 상황이 그래요. 그냥 자식 된 제 도리를 다하는 거지 애정을 가지고 용서하고 그런 건 아니에요”라고 호스피스 병동 안에서 솔직해지는 가족들의 말을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누군가의 편을 들기도 하고 복잡해지기도 했다. 그리고 누가 보더라도 행복하고 건강한 가족들을 보면 그 가족들을 응원하게 되는 나를 보게 되었다. 간호사로 일하며 이렇게 오롯이 감정을 다 느낀다면? 내가 생각하는 약자에게 내 감정이 더 가게 된다면? 그게 옳은 일일까. 그렇다고 내가 판단하고 생각 한 그 상황이 진짜인지…. 아니다 단편적인 말들과 상황으로 누군가를 판단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잘못을 하는 일이었다. 그 수많은 감정을 다 느끼면서 어떻게 이 일을 하나 생각하다가도 누군가 임종을 하게 되는 순간 수많은 눈물 속에 나는 코끝 한번 시큰해지지 않는 인공지능의 로봇 같은 간호사의 모습도 있었다. 아직도 내가 이곳에서 어떤 감정으로 어떤 자세로 일해야 하는지 여전히 배워가고 있다. 누구든 ‘호스피스’라는 단어 앞에 처음 선다면 두려움이 앞선다. 누군가 처음 이곳을 오게 되었을 때, 그 누군가가 아픈 이와 그 가족들이든, 의사 간호사라는 이름의 의료진이든 그 누군가에게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그리고 내가 이곳에서 무슨 생각을 가지고 일해야 하나라는 질문을 하게 되면서 다른 누군가는 이러한 무거운 감정이 앞서지 않게 미리 말해주고 싶다. 호스피스 병동이란 곳은 거창하게 고통을 줄여주는 곳. 마지막을 존엄하게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곳이라는 말의 딱딱한 책 속의 이성적 설명이 끝이라면, 개인적으로 불투명한 창문 너머 그곳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그래서 나뿐만 아니라 처음 호스피스를 접하는 이들에게 조금 말랑하고 부들거리는 감성 한 스푼 곁들여 설명해주고 싶다.


누군가가 나에게 호스피스 병동이 무엇을 하는 곳이냐 물어본다면 이곳은 생일 케이크 위에 켜진 촛불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의 마지막을 지켜봐 주는 곳이라 생각한다.

생일 케이크의 촛불은 아름답게 불타오르지만, 반드시 꺼질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녔다. 모든 사람이 마지막을 맞이하듯, 더 길고 화려하다고 꺼질 수 없는 생일 케이크 위의 촛불은 없다. 그 아름다운 촛불 앞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모여 당신의 즐거운 시간을 함께하며 기나긴 시간을 잘 이겨냈다 위로해 주며 손뼉을 쳐주기도, 힘들었던 고통을 같이 공감하고 눈물을 흘리며 촛불이 꺼지는 순간을 같이 한다. 다들 그 촛불이 진짜 밝고 아름다웠다는 것을 기억해주는 가족들과 호스피스의 사람들. 하지만 생일 케이크 위의 촛불이 하나라고 그 촛불이 아름답지 않은 것은 아니다. 초가 하나라도 생일 케이크의 촛불을 켜지 못하면 안 된다. 그리고 홀로 켜진 생일 케이크의 촛불도 밝고 아름답게 빛난다. 혼자라도 잊지 말길. 당신은 수많은 시간을 지나와 어둠을 밝힌 존재였다는 것을 잊지 않도록 같이 있어 주는 호스피스의 사람들.


생일 케이크의 촛불이 그러하듯 모든 이들이 밝은 빛을 내기 위해 수없이 지나온 많은 그 시간이 누구의 시간과 비교되어선 안 되며 누군가의 시간보다 덜 값지고 더 빛나지 않으며, 그 시간 그대로 존중되어야 할 시간의 마침표를 찍는 순간을 지켜봐 주는 곳. 그곳이 호스피스 병동이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생일 케이크의 촛불이 켜지는 순간이 아닌 꺼지는 그 순간, 마지막을 같이 오롯이 지켜봐 주는 사람들이 있는 특별한 그곳. 나는 호스피스 병동의 평범한 간호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