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똥별, 찰나의 시간에 마주한 우리] 12. 마지막 무대는 나와 함께 2024.06.05

마지막 무대는 나와 함께

음악치료사 이유진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신사·숙녀 여러분 오늘도 저의 콘서트를 찾아와 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들려드릴 노래는.....입니다.”호스피스병동 o호실 문을 열면 오랫동안 기다린 듯이 치료사의 손에 있는 마이크부터 찾는 아버님이 계셨다. “선생님 오늘도 콘서트 해야죠~”노래에 대한 간절함이 전해진다. 호스피스 병동 환자라고 하기에는 에너지가 넘치고 밝고 긍정적이라 치료사마저도 착각을 일으키기도 한다. 젊은 시절 기타 치며 노래 불렀던 많은 추억이 생각나신다며 감성 짙게 노래를 부르신다. 목소리에서 묻어나오는 젊음의 향기는 마치 그때로 돌아간 것 같다. 유행했던 곡을 직접 불러야만 시원하다 시며 마이크를 잡아보지만, 예전 목소리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세월의 흔적만이 숨찬 호흡과 함께 새어 나온다. “에이~ 목소리가 쉬었네! 잘 안되네~”라고 푸념하실 때면 아내는“당신은 원래 그랬어~”라는 말로 이 상황을 웃어넘긴다. 목소리와 호흡은 어느 누가 말하지 않아도 환자임을 알 수 있으나 이 사실을 부정하기에도 인정하기에도 어려운 그 타이밍에“당신은 원래 그랬어~”한마디로 전체를 웃게 만든다. 그건 남편에 대한 배려일 것이다.


불쌍하게 바라보지 않고! 안타깝게 여기는 마음이 우선되지 않고! 누구나 노래 부를 자격이 되며 잘 부를 수도 못 부를 수도 있는 시간! 잠시나마 나 자신에게 집중되어 오롯이 노래만 즐기는 시간! 그 자체가 이 병동에서는 허용되고 자연스러워져 가고 있었다. 같은 병실에 계신 80대 할아버지가 이 환자를 보면서“그래 실컷 불러봐~ 불러봐~”라고 하시는 말씀은 그 기운마저 부럽다는 마음과 마지막을 향해 달리는 동료의 외침에 박수를 보내는 마음이었다. 노랫소리는 병실과 복도가 떠나가도록 울려 퍼지는데도 어느 누구 한 명 귀를 막거나 조용해달라고 부탁하는 이가 없는 건 이곳이 호스피스 병동이기 때문이다.


이 콘서트는 예전에 못다 이룬 꿈을 펼치기엔 부족하지만 잠시나마 주인공이 되어 기쁨과 성취감을 느끼고 아내와 추억 여행하기에는 충분히 의미 있는 공연이었다. 남편의 공연에 손을 흔들며 참여하는 아내의 모습! 신사·숙녀 여러분~하며 시작하는 남편의 노랫소리! 모두 영상으로 남긴 소중한 유산이 되었다. 군대 있을 때 많이 불렀던“사랑을 할 거야”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며 고백하는“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장마 기간에 쏟아지는 빗소리와 어울린다며“그댄 봄비를 무척 좋아하나요” 여름철 떠나고픈 마음을 담아“바다에 누워” 어릴 적 놀던 시절 추억을 담은“풍선” 등 다양한 사연과 함께 온 힘을 다해 마음을 실어 날려 보내셨다. 두 분의 모습에 치료사는 관객이었고 가끔 특별출연으로 두 부부를 향해“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인생의 선물” 등의 노래로 화답해드리며 이곳을 더 풍성한 콘서트장으로 만들었다. 물론 콘서트 주인공은 당연히 환자분이시다.


더운 여름 장마가 그칠 때, 가늘어지는 빗줄기처럼 환자의 기운도 떨어지면서 마지막 고비의 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자신이 이렇게 나빠지고 있는지 모른 채 온 힘을 쏟았나 보다…. 어쩌면 알면서도 홀로 남겨질 아내에게 줄 선물을 위해 마지막까지 애쓰는 것처럼 보였다. 남편의 그 마음을 헤아리듯 아내는“남편이 꿈속에서 콘서트를 펼치고 있는 것 같다”라고 한다. 아내는 마지막 이별의 아쉬움과 슬픔보다 함께 나누었던 소중한 시간을 정리하는 마음으로 나를 안으며“감사해요, 고마웠어요, 덕분에 우리 부부는 정말 행복했어요” 그 따뜻한 고백이 내가 이 자리에 서 있는 이유를 확인시켜주었다. 환자는 마지막까지 아내의 품에서 같은 병실 환자분들의 배웅을 받고 그렇게 떠나셨다.


호스피스 병동 음악 요법사로서 다양한 환자와 가족을 만나게 된다. 음악이라는 도구로 그들의 아픔과 설움을 덜어드리고, 지나온 추억을 돌아보게 하는 다리 역할하고, 풀어지지 않았던 여러 감정과 마음을 전달하는 기회를 만들어 드린다. 슬픔, 웃음, 분노, 기쁨 모든 감정이 허용되며 가족 간 의미 있는 시간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이루지 못한 가수의 꿈마저도 펼쳐드렸듯이….

호스피스 병동은 콘서트장의 마지막 무대와 같다. 어떤 이는 화려하게 박수받으며 마치는 무대가 있는가 하면, 어떤 이는 홀로 외롭게 장식해야만 하는 무대도 있다. 모든 무대의 색깔은 다르지만 각자 무대마다 의미와 가치는 분명히 있을 텐데도 그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채 무대에서 내려오거나 커튼이 닫힐 때면 관객이나 주인공도 얼마나 아쉬움이 남겠는가? 호스피스 병동은 아쉬움 없이 매듭지을 마지막 무대와 비슷하다. 환자들의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게 도와주고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 후회되지 않게 보내도록 돕는 자들이 바로 호스피스 병동의 의료진이요 성직자요 봉사자요 나와 같은 요법사들인 셈이다. 마지막 무대에서 최선을 다했노라 잘했다 잘했다 격려받으며 위로와 지지로 마무리되는 자리, 그들의 필요가 충분히 채워져야 할 자리, 이처럼 오늘도 많은 종사자는 콘서트장에서 마지막 무대를 준비하고 있는 환자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그들의 수고와 노력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