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똥별, 찰나의 시간에 마주한 우리] 15. 성장하는 돌멩이 2024.06.25

성장하는 돌멩이

간호사 이효진

가톨릭관동대학교 국제성모병원


간호사가 되어 첫 직장에 입사한다는 부푼 기대를 안고 2021년 6월 1일 부서 발령을 기다리고 있던 나는 두려움과 기대감이 함께 존재했었던 것 같다. 어떤 부서가 될까? 라는 기대감과 그 부서에 한 구성원으로서, 간호사로서 잘 해낼 수 있을까? 라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 기대감과 두려움도 잠시“선생님 호스피스 병동으로 발령되셨습니다.”라는 말을 들은 순간, ‘호스피스?’생각해보지 않았던 부서였기에 당황할 새 없이 병동으로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신규간호사로서 죽음과 가까운 호스피스에서 말기 암 환자를 돌볼 수 있을까? 라는 많은 생각들과 함께 나는 그렇게 호스피스 병동 간호사로 입사하게 되었다.


허둥지둥 두 달간의 교육과 실무를 병행하며 호스피스에 익숙해질 때 즈음, 많은 환자분 중 한 할아버지 환자에게 마음이 갔던 기억이 남는다. 처치를 할 때도, 일이 끝나고 집에 갈 때도 할아버지와 그 옆에 계신 보호자였던 배우자분은 항상 반갑게 맞이해주고 환한 웃음으로 나를 수고했다며 다독여주셨다. 뿐만 아니라 밥은 먹었냐며 나를 챙겨주시던 따뜻한 말들과 마음을 전달받으며 다독임을 받을 땐 내가 간호사로서 간호를 하는 것보다 환자들과 보호자들의 말 한마디에 내가 치유를 받는 느낌이 드는 나날이 되는 것 같았다.


이러한 따듯한 상황 속에서도 1분 1초마다 컨디션이 달라지던 환자들을 돌보면서 신규간호사로서 정이 갔던 할아버지의 첫 임종을 맞이했던 날, 나는 복잡한 감정들이 서로 뒤엉켜있었던 것 같다. 근무를 하면서 매일 같이 인사를 나누고 정을 나누었던 환자, 보호자를 보면서 슬픔에 잠겨 어떠한 위로의 말씀을 건네야 할지 잘 몰랐고 미숙한 나는 돌멩이와도 같다고 느꼈었던 것 같다. 내 감정마저 추스르기 힘들어 어쩔 줄 몰라 하는 나에게, 보호자는 다가와서 나를 끌어안고“고마웠어요. 선생님 덕분에 이렇게 편안하게 보낼 수 있었어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내가 정말 간호사로서 환자분과 가족들에게 편안한 임종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도움을 드렸나? 라는 미진함만이 남는 것 같았다.

많은 생각에 잠겼지만 내가 받았던 따듯함을 환자와 가족들을 생각하며 마지막까지 베풀고자 사후 처치를 해 나갔다. 관을 제거하고, 몸을 닦아드리며 마지막 돌봄을 제공했고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호스피스 병동에서는 죽음만 살피는 것이 아닌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돌봄을 제공하는 곳임을 알게 되었던 것 같았다.


지금은 2년 차 호스피스 간호사가 된 나는 항상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4년간의 공부를 해왔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공부하면서도 실무에서 행동으로 옮겼을 때‘내가 조금 더 마음으로도 행동으로도 여유로웠다면, 내가 조금 더 환자를 잘 살필 수 있었더라면’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근무의 끝은 항상 아쉬움만 남았기에 지금은 매일 같이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더 불편한 건 없는지, 현재 상태는 어떤지 꼼꼼히 환자들을 보면서 마지막 라운딩을 통해 하루를 마무리한다.


이처럼 잠깐의 시간에 호스피스 병동에서 머물러 있었는데도 호스피스는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곳인 것 같다.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호스피스 보조활동인력, 수녀님, 신부님 모두 다학제간 팀을 이루어 한 환자의 죽음을 편안하게 맞이할 수 있도록 삶을 되돌아볼 수 있게 하는 곳이다. 한 사람의 일생에서 ‘병원’이라는 공간은 임종을 맞이하고 슬퍼하는 장소가 아닌, 잠깐이라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앞에 우뚝 서서 환자와 가족들에게 서로의 새로운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한 장소로 기억되게 하는 팀이 되고 싶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1년간의 시간 동안 이렇게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되는 데에 많은 시간이 걸렸다. 처음 임종을 맞이하였을 때도 진통제로 통증 조절이 되지 않고 힘겹게 죽음을 맞이하는 환자를 이렇게 허무하게 보고 있어야만 하는가?, 왜 증상 조절에만 초점을 두어야 하는가? 와 같은 딜레마가 있었다. 이런 딜레마를 겪으면서 다른 간호사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할까? 신규간호사로서 호스피스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를 생각했고, 그뿐만 아니라 일을 하면서 죽음 앞에서 나는 과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종종 던지곤 했었다.

지금도 수많은 질문이 내 머릿속에 묶여 있지만, 현재의 아름다운 생명을 함께 기억하면서 아름다운 이별을 할 수 있게‘길잡이’로서의 역할을 하는 간호사로 성장하는 것으로 생각하며 나는 그렇게 호스피스 간호사로 한 발자국 더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