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똥별, 찰나의 시간에 마주한 우리] 17. 따뜻한 말 한마디 2024.07.03

따뜻한 말 한마디

간호사 이선영

경기도의료원 의정부병원


유난히도 길었던 코로나 전담 병동에서의 생활이 거의 끝나고, 한 달 전 로테이션으로 완화 병동으로 배치되었습니다.

나름 경력간호사로 자신감 있게 출근하였지만, 완화 병동 간호사로 일하며 환자분께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완화 병동에 무지한 간호사였던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 병실에 들어섰지만, 환자분에게 다가갈 수 없어 주변만 서성이다 나오곤 했습니다.

“안녕하세요? 많이 힘이 드시지요?”라는 안부를 묻는 것조차 죄송한 마음이 드는 순간이었기에….

공허한 눈빛, 가쁜 호흡과 지친 얼굴은 순간순간 나를 침묵하게 했습니다.

굳이 묻지 않아도 그 아픔을 알기에….

조용히 병실에서 주변 정리를 한다거나 주사액만 만지작거리다가 통증을 호소하면 진통제 주사만 놓아주고 나오곤 하였습니다.


그렇게 첫 번째 입원환자를 받게 되었습니다

담관암 말기 판정을 받은 60대 남자 환자라는 정보와 함께

작은 키에 가녀린 허리에는 복대를 두르고 커다란 짐을 양손 가득 들고 환자분 뒤를 따르시던 80대 즈음 보이는 어머니….

환자를 침상에 눕히고 어머니와의 면담을 시작한 후에야 알게 되었던 사실,

남편이 아니고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순간 너무 놀라 “정말요?”라고 말할 뻔했습니다. 아들의 얼굴은 마치 80대 노인의 얼굴과 같았습니다. 암과 싸우는 과정에서 그만큼 엄청난 고통으로 인한 육체적으로 쇠약해질 수밖에 없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슬픔보다는 의지와 희망으로 눈빛이 살아있었습니다.

“어찌 되었든 죽는 날까지 내가 옆에서 지켜야지 불쌍한 내 새끼~”라시며

오래전 이혼한 아들은 지금껏 1남 1녀를 키워내고 살만하니까 몹쓸 병에 걸렸다고…. 이 병원 저 병원을 다 다녀 봤지만, 소용이 없더라고 한탄하시던 어머니.

그저 죽는 날까지 고통 없이 죽기를 바란다고 하시며,

그렇게 완화 병동에서의 생활은 시작되었습니다.

어머니는 하루도 빠짐없이 아들 옆을 지켰습니다.

어머니는 아파하는 아들을 위해 힘든 줄도 모르고 바삐 움직이셨습니다.

마치 아기를 돌보듯 닦아내고 안아주던 어머니.

누워있는 아들에게 웃음을 주려고 언제나 재미있고 유쾌하게 말을 건네는 모습이었습니다.

TV 속에 맛있는 음식점이 방영되면 아들에게 “00아 저거 맛있게 보인다.

손녀딸하고 저거 먹으러 다녀올 테니 너는 여기서 간호사님 말씀 잘 듣고 기다려~!! 알았지?” 아픈 아들은 이내 옅은 웃음을 짓곤 하였습니다.

어머니는 허리 통증으로 복대를 차면서도‘지금 아프면 안 된다’라며, 허리에 찬 복대를 다시금 동여매셨습니다.

병실에 들어가는 모든 간호사에게도 “이쁜 선생님 오셨네! 어찌 이렇게 이쁘게 생겼어~ 근데 우리 아들도 참 잘생겼지? 하하하” 하시며 병실 분위기를 밝게 해주시고 작은 농담 하나에도 환자분을 웃음 짓게 하였습니다.

“병간호하려면 환자보다 우리가 잘 먹어야지”라며 옆 환자의 보호자도 살뜰하게 챙기고 위로해 주시던 정말 마음이 따뜻하신 분이셨습니다.

따뜻하게 닦아내고 어루만져 주는 모습을 보면서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부모의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알게 해주신 분.

나 역시도 말 한마디 한마디에 환자와 보호자가 따뜻함을 느껴 그들이 위로받을 수 있는 간호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지막 순간을 알고, 사랑하는 가족과 같이 아프고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사랑하고 화해하는 의정부병원 완화 병동은 ‘사랑’입니다.


한 달 남짓 완화 병동에서 근무하며 가장 고마웠던 우리 병동 선생님들!!

세심하게 가르쳐 주시고 같이 아파하고 서로 응원해주시는 동료 선생님들과 수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나는 이곳에서 다시금 삶의 에너지를 찾을 수 있었고, 감사함으로 인생의 의미를 찾으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