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똥별, 찰나의 시간에 마주한 우리] 18. 나의 처음 2024.07.03

나의 처음

보조활동인력 윤진희

인하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


전업주부에서 탈피하여 직장인이 되었다는 설렘과 이제껏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새로운 일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와 함께 찬 새벽 공기를 마시며 처음 출근하던 날이 엊그제같이 생생한데

나는 어느새 경력 6년 차의 호스피스 보조활동인력이라는 기다란 명칭의 직업인이 되었다.


보조활동인력으로서 내가 할 일은 말기 암 환자들의 일상생활을 보조하여 안전하고 편안한 병상 생활이 되도록 도와주는 역할이다. 병간호 일에 생초보였던 나는 식사 보조·양치·세면·옷 갈아입기·화장실 이동·휠체어 태우기 등등 환자들의 다양한 요구사항을 세세히 들어주며 겉으로는 태연한 체하였으나 마음속은 나의 한계를 벗어나는 대형 사고(?)가 생기면 어쩌나 전전긍긍하며 긴장하고 있었다. 내가 어려워했던 일은 기저귀 케어였고 그 일은 실습의 기회도 자주 주어지지 않아 금방 익숙해지지 않았고 요령도 필요한 일이었다.


그 대형 사고는 출근 삼 일째에 일어났다. 호출 벨을 누르신 분은 대화는 가능하지만 스스로 몸을 가눌 수 없는 환자였다. 미안해하는 표정으로 기저귀를 봐달라 하셨고 물품을 준비하여 기저귀를 살짝 열자 순간 방수포 위로 변이 넘쳐흘렀고 곧이어 다급하게 “소변! 소변!” 하시더니 배뇨까지 하셨다.

환자는 미안함으로 어쩔 줄 몰라 하셨고 나는 놀랐지만 침착하게 방수포를 갖다 대며 “괜찮아요. 편하게 보셔요. 깨끗이 닦아드릴게요.”라며 환자를 안심시켰다. 그 뒤처리를 어떻게 했는지 지금은 생각나지 않는다. 내 얼굴은 새빨개졌고 땀으로 뒤덮였으며 울음이 터지기 직전이었다는 것과 필요 이상의 많은 물품을 소모했었다는 것 그리고 두고두고 그 상황을 복기하며 좀 더 능숙하게 일 처리 하는 방법을 곰곰이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었다는 기억밖에 남아있지 않는다. 그러나 그 일이 있고 나서 기저귀 케어에 대한 부담감으로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고 그 어떤 상황이 닥쳐도 당황하지 않고 대처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으니 나에겐 귀한 경험이 된 것이다.


돌아보면 초보 시절엔 인은 서툴러도 그 손끝에는 정성이 가득하였고,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이심전심의 순간들이 있었고 말하지 않아도 가려운 곳을 긁어 줄 수 있을 만큼 내 마음과 눈은 환자들을 향해 열려있었던 듯하다. 지금의 나는 단순한 기능인이 되어있는 것은 아닌지 나 자신을 들여다보게 된다.


“너무너무 아파서 빨리 죽었으면 했는데 지금은 안 아프니까 살고 싶네요.” 하시며 내 건강을 부러워하시는 환자를 보면 나에게 주어진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며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사랑하는 가족과 형제, 자매, 친구 이웃들은 또 얼마나 귀한 존재들인지 그들에게 소홀했던 시간을 반성하며 좀 더 자주 얼굴 마주 보며 대화하고 감사함을 표현하고 사랑할 것을 나에게 명령한다. 매사를 사랑하고 감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