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똥별, 찰나의 시간에 마주한 우리] 21. 선택 2024.07.22

선 택

사회복지사 이미환

봄날요양병원


호스피스가 뭔가요? 호스피스에서는 무슨 일을 하는 건가요? 호스피스에서 사회복지사가 하는 일은 어떤 건가요? 호스피스에 대한 것은 들어보기는 했는데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곳에는 죽을 사람들만 가는 곳인가요? 주변에서 많이 받게 되는 질문이다. 나 역시 처음 호스피스에 대한 다양한 지식이 없이 일을 시작했고, 하면서 알아가는 과정 중에 있다.

복지사는 한 기관에서 3년 정도는 근무를 해봐야만, 그곳의 전체적인 일의 흐름을 조금은 알게 된다고 말을 한다. 처음 이곳에서 근무할 때도 전 직장에서의 복지 업무와 같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그동안의 경험과 자원, 지식을 가지고 쉽게 접근했던 거 같다. 하지만, 내 생각들은 하나하나 깨지기 시작했고, 이 말은 초기에 다양한 시행착오를 경험했다는 의미이다.


근무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병동에서의 생일파티를 진행하게 됐다, 전에 있던 기관에서의 행사와 같을 거라는 생각으로 진행을 했다. 행사가 끝나고 난 후에 남은 음식을 나눠 먹고 바로 치우고 하는 가운데 너무나 빠르게 마쳤다, 진행 과정에만 맘을 썼고, 잘 마무리 했다는 생각에 안도하면서 환자의 얼굴을 봤는데, 뭔가 환자가 좋아하지 않는다는 느낌과 불편한 감정이 느껴졌다. ‘아~ 내가 지금 만나고 있는 클라이언트는 전에 근무했던 곳에서의 클라이언트와 다르지?’ 하는 생각에 부끄러움과 죄송한 마음이 밀려왔다. 이곳에서의 행사(프로그램)는 형식과 결과가 우선이 아닌, 마음으로 먼저 다가가야 하는 분들이고, 그것은 화려한 이벤트보다는 따뜻한 말과 표정, 그리고 마음으로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 첫 번째 경험을 통해 환자와 가족을 중심으로 진행을 해야 한다는 인식하게 된 것이다.


코로나로 인하여 3년여 동안 다양한 임종의 모습들을 봤다. 면회 통제가 강화됐고, 가족의 출입이 자유롭지 않은 가운데 두 딸을 가진 어머님이 임종하셨다. 한 명이 확진자가 됐고, 한 사람은 접촉자로 병실에 들어올 수가 없는 상황으로 엄마 혼자서 임종을 맞이했다. 출근하여 임종실에 들어가니. 이미 체온이 싸늘한 가운데 장례식장 직원들이 모시러 올 때까지 평온히 누워 계심을 봤다. 순간 어머니를 보지 못한 딸들의 마음이 전해오면서, 지금, 이 순간의 모습이라도 보여드리고자 영상 통화를 진행했고, 상심 가득한 딸은 전혀 생각하지 못한 가운데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오열을 하며 울었다. 장례식 이후에 “그때 그렇게 해주서 감사했어요, 그렇게라도 엄마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너무 감사했고, 엄마에게는 너무 죄송했어요” 한다. 코로나가 만들어낸 또 다른 이별의 모습이다.


일하면서 가장 많이 듣고 쓰게 되는 단어가 가족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족’이 단어 안에 숨어 있는 많은 의미가 임종 시 다양한 모양으로 보인다. 한 사람의 죽음이라는 순간에 가족은 해체와 단합, 흩어졌다가 모이기도 한다. 가족 안에 있는 다양한 감정들이 죽음이라는 순간에 여러 가지 모양으로 재탄생되기도 한다.


최근에 점차 증가세를 보이는 가족은 무연고자다. 가족이라는 관계 안에서 떨어져 나와 혼자서 죽음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가족, 형제들과 단절이 돼서 연락을 끊고 살았고, 찾아오는 이가 없어서 외롭게 임종 시까지도 혼자서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고 계신다. 현대 사회에서 만들어지는 외로움이다. 이분들에게 더 특별한 마음이 간다.


21년도에 “상주 가족 돌봄”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상주하고 계신 가족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드리기도 하는데, 임종실에 계시는 동안 가족들은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 환자를 지켜야 하는 것도 있지만 무엇인가 입속에 음식을 넣은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복지사는 신속하게 결정을 해야 하는데, 그분의 마음을 지켜드려야 하는가? 아니면, 지금이라도 드시게 하고 장례식장까지 갈 수 있도록 해드려야 하는가? 라는 선택의 순간이다. 후자를 선택하여 한 끼 밥을 대접하여 속을 채우게 하고 앞으로 만나게 될 헤어짐의 시간을 준비하게 했다. 그 이후에 가족과 통화를 했는데 “그날 먹은 밥으로 잘 버텼어요, 감사했어요, 잊지 못할 거 같아요” 한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고민하게 되는 것 중에 또 하나는 음식이다. 환자는 자신이 선호하고 즐겨 먹었던 음식에 대한 깊은 갈망과 욕구가 있다. 그 음식이 생각이 나서 가족들에게 가져오라고 하기도 하고, 복지사에게 마음을 전하기도 한다. 하지만 금식의 경우이거나, 음식을 드시면 통증이 더 심해지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도 가족과 병동의 종사자들은 결정을 내리기가 어렵다. 삶의 끝자락에서도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함을 느낀다.


이곳에서 가족들은 결정을 내리고 선택을 해야 하는 긴박한 순간에 놓이기도 한다.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를 지켜보는 가족들은 합리적인 생각을 못 하는 경우가 있어서 누군가가 결정을 내려주길 원하기도 한다. 간혹 가족들은 자신들의 선택으로 인하여 깊은 절망을 한다. “집에서 더 돌보지 못하고 이곳에 맡기고 가는 자신은 죄인이 된듯해요.” 하면서 자신의 선택을 자책한다. 이럴 때 복지사가 해줄 수 있는 위로의 말은 “결과에 상관없이 지금 이 선택이 최선의 것이고,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라고.


3년여 동안의 경험을 통해 조금은 호스피스의 활동을 알았다고 말하고 싶다. 다양한 이별과 다양한 사연을 만나면서 환자와 가족을 어떻게 만나고, 보내야 하는지도 알게 됐다. 어찌할 바를 몰라서 혼란스러워하는 가족이나 환자들에게 함께 있어 주고, 공감하고, 남은 가족들이 후회와 죄책감이 작아지도록 손을 잡아드리는 것, 그리고 아름다운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옆에서 지켜드리는 그 역할을 앞으로도 충실히 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