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화의료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2023.12.06


오늘은 입원 중인 말기 환자 가족의 ‘선택’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선택을 해야 하지만 이 선택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말기로 진단받은 이후 환자의 삶의 질과 사별 후 가족들의 정신건강에까지 모두 영향을 주는 ‘선택’.

 

 

서로 다른 선택을 한 두 가족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73세 여성인 유 OO 씨는 담낭 암이 재발돼 폐로 전이가 된 상태로 서울의 A상급종합병원 종양내과에 입원하고 있다. 환자는 반복적인 구토로 탈진해 응급실을 통해 3일 전 입원했고 현재 구토억제제 투여와 수액 요법을 통해 조금 안정된 상태이다. 하지만 현재 환자 상태는 암세포가 배 속에 퍼져 장이 서로 들어붙은 상태로, 장운동이 안 되기 때문에 앞으로는 음식 섭취를 기대하기 힘든 말기 상태다. 1달 이상 생존이 기대하기 어려워 주치의는 환자에게 현 상태 및 예상 경과를 알리고 호스피스 돌봄을 포함한 돌봄 계획을 함께 만들어보자 보호자에게 권했다.

 
 
(선택 1)

그러나 자녀들은 환자에게 현 상황을 알리기를 강력히 거부했다. 둘째 아들은 주치의 판단 자체를 부정하며 말기 암 환자에게 좋다는 강원도의 황토 찜질방으로 옮겨달라 주장했다. 첫째 딸은 우리나라 최고의 병원에서 내린 진단이니 안 믿을 수는 없고 그냥 마지막까지 병원에서 해줄 수 있는 모든 치료를 해주기만을 바랐다. 호스피스는 죽기 직전에 가는 곳이라 생각해 상담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환자는 금식 지시를 받고 종일 병실에 누워 무료한 시간을 보냈다. 상태가 안 좋아져 가는 걸 어렴풋이 느끼지만 아무 설명이 없어 주치의에 대한 원망만 쌓여갔다. 환자는 입원 11일째 구토 후 열이 나며 호흡곤란까지 시작됐다. 구토물이 폐로 흡인되며 발생한 ‘흡인성 폐렴‘이 발생한 것. 열이 나며 환자는 종일 안절부절못하고 주삿바늘을 자꾸 뽑아 버렸고 밤새 소리를 질러 같은 병실 환자들도 모두 잠을 설치게 했다. 주치의는 이런 변화를 ’섬망‘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환자는 하루 30만 원을 부담해야 하는 1인실로 옮겨지고 주삿바늘을 뽑지 못하게 양손이 침대 난간에 결박됐다. 진정제가 투여됐지만, 환자는 여전히 몸부림을 치고 그때마다 수액 줄들과 모니터 선들이 얽히며 요동쳤다.

입원 16일째. 주치의는 가족들에게 환자가 곧 임종하실 것 같다 알렸다. 가족들은 아무 경황도 없고 무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난감했다.

 
 
(선택 2)

자녀들은 상의 끝에 호스피스팀을 만나 상담을 받아보기로 했다. 지난 며칠 엄마의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함께 견디며 '이젠 고통 없이 편안한 시간만을 희망'하기로 의견을 모았기 때문. 간병을 주로 맡아오던 둘째 딸이 먼저 호스피스팀의 전문간호사를 만나기 위해 상담실을 찾았다.

둘째 딸은 "호스피스는 죽기 직전에 가는 곳이라는 생각에 상담을 앞두고 긴장도 되고 기분도 썩 좋지가 않았습니다."라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엄마가 병을 진단받게 된 과정부터 지난 2년의 시간을 복기하듯 토로했다. "온갖 감정들이 찌개처럼 끓어오르는 것 같아요"라며 둘째 딸은 눈물을 보였다.

긴 이야기 끝에 호스피스 전문간호사는 "그래요. 가족들 모두 정말 잘 견뎌오셨어요. 이젠 저희들도 어머님과 가족들을 꼭 돕고 싶어요"라고 작은 위로를 전했다.

대단치도 않은 위로 같지만 둘째 딸의 눈물은 멎지 않았다. "몸도 마음도 다 지치고 엄마를 위해 무언가 큰 결정들을 해야 하는 매 순간들이 너무 힘든데 내 편이 이 병원 안에 생긴 것 같아요"라며 울먹였다.

이어진 사회복지사 선생님과의 상담. 환자인 엄마가 어떤 일에 행복해하고 무엇에 위안을 받는지를 무엇을 궁금해하는 사람인지를 상세하게 물었다.  

특히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기지 않고 현재 주치의 선생님에게 치료받는 동안에도 호스피스 돌봄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가족들에겐 너무 안심이 됐다.

자문형 호스피스팀의 협진이 시작된 후  환자의 하루는 조금 바빠졌다. 봉사자들이 직접 환자 병실로 발 마사지를 하러 찾아왔다. 따뜻한 마사지를 받을 때 두런두런 나누는 수다까지 더해질 때면 환자의 얼굴은 조금 더 편해 보였다. "내일은 딸과 아들이 음악치료사와 나를 위한 노래를 들려주는 수업이 예정되어 있어요"라고 소개하는 환자 얼굴엔 미소가 띠었다.

호스피스팀을 만난지 3일 째 주치의는 현재 상태를 환자 본인에게 전했다. 환자는 "옆에 있던 딸은 내내 눈물을 보였지만 오히려 전 홀가분했습니다. 제 몸인데 제가 왜 몰랐겠어요. 많이 안 좋아졌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겠구나 하는 생각 벌써부터 하고 있었어요. 그동안 애써주신 교수님이 솔직히 제 상태를 알려주고 호스피스팀도 소개해주니 끝까지 날 위해 뭐 하나라도 더 챙겨주시는구나 싶어 고마웠어요."라고 덤덤히 인사를 전했다.

흡인성 폐렴이 발생한 후 환자에게 섬망이 생기자 자문형 호스피스팀은 주치의에게 환자 안전을 위한 결박을 대신 ‘완화적 진정치료’를 권고했다. 예상되는 폐렴의 경과가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고 통상적인 치료로 섬망이 조절되지 않는 상황이라는 판단에 따른 결정이었다. 자문형 호스피스 이용 중 임종 돌봄을 위한 1인실 비용은 하루 15,000원으로 환자는 1인실로 옮겨졌다.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던 중에 1인실 이용 4일째 임종했다.
 

 

자문형 호스피스·완화의료팀은 별도의 독립된 입원형 호스피스 병동이 아닌 일반 병동에서 담당 의료진에 의해 치료받고 있는 말기 환자에게 전인적인 완화적 돌봄을 자문의 형태로 제공하기 위한 팀으로, 호스피스·완화의료의 전문교육을 받은 의사, 전담간호사, 사회복지사를 중심으로 영적 돌봄 제공자, 자원봉사자 등으로 구성된 다학제팀을 의미합니다.

 

 

의료에 대한 큰 기대를 갖고 완치를 목표로 치료를 받아오던 환자나 가족들에게는 완화의료적 돌봄으로 전환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때 급성기 병상으로부터 호스피스·완화의료 병동으로의 직접적인 이동은 종종 치료를 중단하거나 포기되는 것으로 오해될 수도 있어 완화의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는 환자들이 이용을 꺼리게 하는 요인이 됩니다. 이는 또한 주치의들이 의뢰를 주저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완화의료를 선택한 경우라 하더라도, 호스피스 완화의료 병동을 이용하고 싶지 않거나 의료기관에서 호스피스 완화의료병동을 운영하지 않는 경우라면 ‘자문형 호스피스’는 더욱 필요할 것입니다.

자문형 호스피스팀은 말기 환자 사후에 가족 등이 병적 애도의 고통을 피할 수 있도록 돌봄의 경과 중 특히 임종 시기에 대하여 적절하게 가족에 대한 지원(정보제공, 교육, 상담, 지지 등)을 제공하며 임종기 환자의 돌봄과 임종 후 대처 등에 대한 담당 의료진 대상 교육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현재 자문형 호스피스는 시범사업 중이며 전국의 주요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에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2019년 4월 현재 27개소) 중앙 호스피스센터 호스피스 완화의료 홈페이지에서 해당 기관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현황 및 통계 확인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