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중증 질환 위주’로 전환된 상급종합병원… 말기암 환자는 쫓겨나고 있다 2025.04.28

‘중증 질환 위주’로 전환된 상급종합병원… 말기암 환자는 쫓겨나고 있다

오상훈 기자


전공의 이탈 등에 따른 의료진 부족으로, 대형 병원들이 말기암 환자의 퇴원을 유도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여기에 더해 상급종합병원들이 중증 위주로 전환되면서 중증 질환에 포함되지 않는 말기암 환자들에 대한 전원 요구 시점도 빨라지고 있다. 호스피스 병동이 가장 이상적인 선택지로 평가되지만 그 수가 워낙 부족해 ‘운이 좋아야’ 입원하는 실정이다.

항암·방사선 치료 안 받으면 암 환자도 중증 아냐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 사업은 상급종합병원이 중증 질환을 중점적으로 치료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이다. 최상위 의료기관인 3차 병원에 경증 환자들이 몰려 중증 및 응급 환자에 대한 치료가 늦어지는 현상은 우리나라 의료 체계의 고질적인 문제로 여겨져 왔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는 상급종합병원 외래진료 시 경증 환자의 자기부담률을 높이고 입원료, 응급진료, 중증 수술 및 의뢰·회송 관련 수가 체계를 신설했다.

그런데 중증 단계를 지난 말기암 환자들이 상급종합병원에서 내쳐지고 있다. 중증 환자 위주로 치료하기 위해 병상 수를 줄인 상급종합병원들에게 말기암 환자까지 입원시킬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말기암 환자는 치료보다는 증상 완화와 삶의 질 관리가 주목적이므로, 해당 사업의 ‘중증’ 정의에는 맞지 않는다.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김대균 권역호스피스센터장은 “흔히 중증이라고 여겨지는 암도 입원한 뒤 항암이나 방사선 등 적극적인 치료를 받지 않는다면 비중증으로 분류된다”며 “호스피스 병동 입원 대상인 말기암 환자 대부분은 상급종합병원에서 비중증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환자들, “호스피스 권유 시점 빨라져”
지난해 전공의 이탈로 어렵게 치료를 이어가던 말기암 환자들에게 이번 구조 전환은 이중고가 됐다. 상급종합병원에는 전국의 암 4기, 재발암 등 말기암 환자들이 내원한다. 기존에는 중환자실에 입원해 임상시험에 참여하거나 통증 완화 등의 처지를 받을 수 있었지만 현재는 주변의 2차 병원이나 암 재활 요양병원 등으로 전원한 뒤 상급종합병원으로 통원하며 외래 진료를 받고 있다. 연세암병원 완화의료센터 박중철 교수는 “이렇게 통원하던 환자들은 증상이 악화하면 해당 병원 응급실로 내원해 연명치료를 받다가 사망한다”고 말했다.

호스피스 전원을 권유하는 시점도 빨라졌다는 게 환자들의 입장이다. 한국중증질환연합회 김성주 대표는 “최근, 상급종합병원들이 말기암 환자들에게 호스피스 병동 전원을 권유하는 시점이 빨라졌다”며 “최후의 치료가 끝나도 한두 번 정도 항암이나 방사선 치료를 더 해주곤 했는데 그런 게 없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호스피스 병동 부족… “상급병원 구조 전환이 기름 부어”
치료가 어려운 말기암 환자에게 호스피스·완화의료를 권유하는 게 나쁘다고 보기는 어렵다. 호스피스 병동은 환자와 보호자의 삶의 질을 관리하며 그들에게 이별을 준비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문제는 환자들이 갈 수 있는 호스피스 병상 수가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국내 호스피스 병상 수는 1500여개다. 말기암 환자들이 사망 전 호스피스를 이용하는 비율은 20%에 그친다.

박중철 교수는 “원래도 호스피스 병동은 그 수가 부족해 환자 대부분이 임종 전 2~3주 입원하곤 했다”라며 “최근에는 환자들이 몰리다보니 3~4일 있다가 돌아가시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김성주 대표는 “호스피스는 진단 초기부터 등록해야 입원이 가능한 수준이라 기대하지 않는 환자들이 많다”며 “대부분은 요양병원으로 들어가는데 이마저도 여의치 않아 통증 관리가 안 되는 집에서 돌아가시는 분들도 있다”고 했다.

안 그래도 부족한 호스피스 병상을 더 줄이라고 부추기는 게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 사업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호스피스 병상은 환자들이 요양급여의 5%만 부담하다 보니 다양한 돌봄을 위한 추가 비용은 병원이 떠안는 구조다. 그나마 규모가 큰 상급종합병원들이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운영해왔지만 중증 위주로 바뀐 현재는 명분마저 사라졌다는 것이다. 김대균 센터장은 “병상 수를 줄여야 하는 병원이 비중증인 말기암 환자들을 위한 호스피스 병상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아직 호스피스 병상 수를 줄인 병원은 없지만 병상이 늘어날 길은 원천 차단당했다”고 말했다.

‘공공 병원’ 대신 ‘공공 호스피스 기관’ 세워야
중증 환자를 치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환자의 마지막까지도 책임지는 의료 체계가 시급한 시점이다. 말기암 환자 대다수가 거치는 상급종합병원이 전환점에서 역할을 해주지 않는다면 환자들은 점점 소외될 수밖에 없다. 김대균 센터장은 “상급종합병원 호스피스는 단순히 말기암 환자에게 완화의료를 제공하는 데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완화의료 전문 의료진을 양성하고 임상 기술도 발전시키는 역할을 맡는다”며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호스피스 병동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가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상급종합병원 허가 병상에서 호스피스를 제외하고 말기암을 중증 질환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지역에서 말기암 환자들을 받을 수 있도록 호스피스·완화의료 인프라를 구축할 필요도 있다. 박중철 교수는 “최근 정치권에서 공공 병원을 만든다는 주장이 나오는데 지방의료원 이용 행태를 보면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며 “차라리 공공이 운영하는 호스피스 기관을 만들어 넘치는 수요를 충당하는 게 훨씬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