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4년 4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미래 사회 대비를 위한 웰다잉 논의의 경향 및 과제 보고서’(아래 웰다잉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의 81.1%는 말기 및 임종기 환자가 됐을 때 호스피스·완화의료 서비스(아래 호스피스)를 이용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구조적 한계로 인해 평온한 임종을 돕는 ‘생애 말기 돌봄’의 취지가 제대로 달성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계속된다.
평온한 임종을 위한 대기표,
호스피스의 좁은 문
호스피스는 회복 가능성이 거의 없는 말기 환자에게 불필요한 연명치료 대신 통증 완화와 심리적·영적 돌봄을 제공하는 제도다. 환자는 단순한 의료적 처치뿐만 아니라 ▲심리 상담 ▲종교적 지원 ▲가족 돌봄 등 폭넓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또한 의료진과의 대화나 종교·예술 프로그램을 통해 불안을 완화하고, 가족과 함께 남은 시간을 의미 있게 정리할 수 있도록 상담과 애도 준비 지원도 이뤄진다.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김대균 권역호스피스센터장은 “호스피스를 ‘더 이상 치료하지 않는 곳’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는 환자와 가족이 마지막 순간까지 존엄한 삶을 유지하도록 돕는 전문적인 돌봄 시설”이라고 말했다.
호스피스는 제공 장소와 방식에 따라 ▲입원형 ▲가정형 ▲자문형으로 나뉜다. 입원형 호스피스는 전용 병동에 입원한 환자에게 의료진이 통증 관리와 돌봄을 24시간 제공하는 형태다. 또한 국민건강보험(아래 건강보험) 요양급여 기준에 따라 최장 60일까지 급여 적용을 받을 수 있다. 가정형 호스피스는 전문팀이 환자의 자택을 직접 방문해 진료·간호·심리상담 등을 지원한다. 자문형 호스피스는 일반 및 외래 병동에서 치료받는 환자에게 호스피스 의료진이 자문과 상담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호스피스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은 긍정적이다. 중앙호스피스센터가 지난 2023년 6월 실시한 ‘호스피스·완화의료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72.9%는 호스피스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웰다잉 보고서에서도 전체 응답자의 62.4%가 호스피스‧완화의료에 대해 알고 있다고 답했다. 서울신문과 대한의료사회복지사협회가 2019년 1월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치료 가능성이 거의 없는 만성질환자의 81.3%가 호스피스 이용 의향을 밝히기도 했다. 대한웰다잉협회 최영숙 협회장은 “대부분의 사람이 마지막을 사랑하는 가족 곁에서 편안히 맞이하길 원한다”며 “존엄한 임종에 대한 바람이 호스피스에 대한 긍정적 수요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그러나 높은 수요에도 불구하고 실제 호스피스 이용은 쉽지 않다. 중앙호스피스센터의 ‘2024 국가호스피스‧완화의료 연례보고서’(아래 호스피스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호스피스 병상은 1천815개로 인구 100만 명당 28개에 그친다. 이는 유럽완화의료협회(European Association for Palliative Care, EAPC)가 권고하는 50개의 절반 수준이다. 김 센터장은 “긴 대기 시간을 고려하면 환자들이 실제로 체감하는 접근성은 더욱 낮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백성루카병원 김호성 진료과장도 “수도권 호스피스 병원에 수요가 집중돼 대기가 몰리는 경우가 있다”며 “지역별 병상 수 분배와 접근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호스피스를 이용할 수 있는 질환이 제한적이라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은 현재 호스피스를 이용할 수 있는 질병을 ▲암 ▲만성호흡부전 ▲만성간경화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만성폐쇄성호흡질환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이용은 암 환자에게 집중돼 있다. 호스피스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호스피스 이용자 2만 4천318명 중 비암성 질환 이용 환자는 108명으로, 0.42%에 그쳤다. 김 센터장은 “암은 병기와 예후가 비교적 뚜렷해 말기 전환 시점을 판단할 수 있지만, 만성질환은 악화와 호전을 반복해 호스피스를 권하기 어렵다”며 “비암 환자는 가정형·자문형으로만 제한돼 입원형 호스피스에 비해 돌봄이 비교적 부족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병상 부족으로 대기 시간이 길어지면서 환자들이 호스피스를 제때 이용하지 못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호스피스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호스피스 환자의 평균 입원 등록 시점은 사망 30일 전으로, 임종이 임박한 상태에서 뒤늦게 서비스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로 인해 전체 환자의 23.4%는 호스피스에 일주일도 채 머무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병상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다 보니 보호자들은 최소 3곳 이상 병원에 동시에 대기를 걸어두는 ‘호스피스 뺑뺑이’를 반복한다. 호스피스 입원환자의 보호자 정모(53)씨는 “호스피스를 예약하기 위해 4군데의 병원에 대기를 걸어놨었다”며 “대기에 상당한 시간이 걸려 환자와 가족 모두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호스피스완화간호사회 윤수진 기획이사는 “수도권 일부 병원은 20여 개 병상에 70명에 달하는 환자가 대기 중인 상황“이라며 “대기 중에 돌아가시는 분들이 적지 않아 보호자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여러 기관에 동시에 문의하는 것이 일상”이라고 말했다. 지난 2022년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인재근 전 의원은 호스피스 병상 부족으로 인해 단일 병원에서만 대기 중 사망자가 100명에 달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한국호스피스협회 김도봉 협회장은 “긴 대기 탓에 입원이 늦어지는 동안 환자의 증세가 악화해 외래 접수 때 이미 의식이 없는 경우도 많다”며 “임종을 앞두고 급히 입원을 준비하는 현실이 가장 안타깝다”고 전했다.
‘제도’와 ‘재정’의
벽 앞에 선 호스피스
건강보험 수가에만 의존하는 현 구조가 호스피스 운영을 어렵게 한다는 지적도 있다. 현행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르면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한 암 환자는 비급여 항목·상급병실료를 제외하고 진료비의 5%만 본인이 부담한다. 적은 본인 부담금 덕에 환자는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지만, 인력 충원·공간 확보·고가의 치료비 등 운영에 필요한 부가 비용은 대부분 병원과 호스피스가 부담하는 구조다. 김 협회장은 “항암치료를 위해서는 고가 약제와 처치가 필요한데, 대부분의 비용을 호스피스가 자부담해야 한다”며 “적자가 나는 게 당연한 구조”라고 말했다. 최 협회장도 “호스피스 운영을 이어갈수록 적자가 커지기 때문에 대형 병원조차 운영을 꺼리는 상황”이라며 “현재의 구조가 적극적인 돌봄 제공과 병상 확대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일당 정액제’로 운영되는 수익 구조도 병원의 부담을 가중시킨다. 호스피스에 환자가 하루를 입원하면 실제 서비스 이용 정도와 관계없이 진료·간호·상담·식사 등 대부분의 서비스가 묶여 일괄 계산된다. 환자 상태나 돌봄의 강도가 달라져도 그만큼의 비용을 보전받기 어려워 투입된 인력과 비용은 고스란히 기관의 부담으로 남는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 2024년 기준 하루 수가는 약 23만 원에서 48만 원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 김 협회장은 “일반 입원 진료는 환자 상태·치료 방법에 따라 환자에게 수천만 원까지 청구할 수 있지만, 호스피스는 인력이 많이 투입돼도 하루 단가가 고정돼 있어 비용을 충당하기 어렵다”며 “이로 인해 호스피스 운영 자체를 기피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호스피스 인력에게 과중한 업무량이 할당된다는 점도 문제다. 「연명의료결정법 시행규칙」은 호스피스 병상 20개당 전문의 1명 이상, 병상 10개당 간호사 1명 이상을 둘 것을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해당 기준이 현장 상황을 고려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제호스피스‧완화의료연구소 조현 소장은 “간호사 1명이 하루에 환자 10명을 돌보는 것은 지나치게 과중한 업무 강도”라고 지적했다. 김 센터장 역시 “현재의 인력구조로는 호스피스의 핵심인 ‘전인적 돌봄*’을 실현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심지어 호스피스 인력은 단순 의료 지원 외에도 ▲환자와 가족에 대한 전인적 평가 및 돌봄 계획수립 ▲의사 처방에 근거한 돌봄 및 간호 제공 ▲주기적인 환자와 가족상담 ▲환자와 돌봄 제공자 교육 ▲임종 돌봄 ▲호스피스 서비스 교육 및 지원 등을 전방위적으로 담당한다. 김 협회장은 “호스피스 의료진은 의료 외적인 부담도 상당하다”며 “업무 강도가 일반 의료진에 비해 높은 편인데도 이에 대한 인센티브 등 보상 체계가 미비하다”고 말했다. 김 진료과장은 “근무하며 겪는 정신적·육체적 힘듦에 비해 적절한 임금과 휴가가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의료진들의 호스피스 근무 기피 및 이직으로 이어진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호스피스·완화의료 병동형 간호·간병서비스 인력배치 모형 개발」에 따르면 호스피스·완화의료병동 간호사 중 사직·이직 의사가 있는 사람이 전체 간호사 중 54.2%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직 사유로는 ‘정신적 혹은 영적 소진이 심함’이 전체의 17.6%로 1위를 차지하는 등 피로가 가중되는 근로 환경이 주된 문제로 꼽혔다. 김 협회장은 “호스피스 의료진은 만성적인 인력난에 시달리기 때문에 지원자가 있으면 단기 교육만 거친 뒤 곧바로 현장에 투입된다”며 “임종 환자와 가족을 지탱할 정서적 준비 없이 과중한 업무에 내몰리다 보니 또다시 이직을 결심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설명했다.
모두에게 닿을
호스피스를 향한 해법
호스피스 환자의 삶을 존중하고 존엄한 죽음을 보장하기 위한 방안으로 ▲호스피스 대상 질병 개편 ▲차등 수가제 도입 ▲호스피스·완화의료 교육과정 개편 등이 제시된다. 특히 호스피스 대상자 선정 기준의 근본적 수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행 제도는 말기 암 및 비암성 질환 4가지만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말기 심부전이나 치매 등 증상이 급격히 악화되는 질환군은 제도 밖에 놓여 있다. 조 소장은 “특정 질병이 아니라 고통을 겪는 환자 자체가 기준이 돼야 한다”며 “필요성에 기반한 대상자 기준 완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돌봄 사각지대는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대병원 완화의료‧임상윤리센터 유신혜 교수도 “비암 환자군은 질병의 진행 과정이 달라 호스피스 치료로 전환하는 시점을 결정하기 어렵다”며 “더욱 명확한 가이드라인과 환자군별 서비스 모델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표적으로 대만은 국민건강보험(NHI) 제도에 ▲심부전 ▲만성 신질환 ▲폐질환 ▲간경변증 등 보다 넓은 범위의 질환을 포함해 지원하고 있다. 그 결과 비암성 사망자의 완화의료 이용률은 지난 2010년 약 0.8%에서 2020년 약 23.5%로 크게 늘어났다.
일당 정액제로 운영되고 있는 현행 방식을 ‘차등 수가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차등 수가제란 입원 기간에 따라 하루 단가를 다르게 책정하는 방식이다. 말기 환자는 입원 초기와 임종 직전에 비용과 인력이 집중적으로 투입되지만, 현행 제도는 이 시기와 안정적인 시기의 수가를 동일하게 책정해 병원이 손해를 보기 쉽다. 조 소장은 “고강도·중강도·저강도·임종기 등의 환자 단계를 구분하고 시기별로 다른 수가를 책정하는 차등 수가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호스피스에 대한 의료진의 이해를 높일 수 있도록 교육과정이 개편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최 협회장은 “호스피스를 요양시설과 비슷하게 여긴 채 근무를 시작한 의료진 중에는 예상과 다른 환경 탓에 어려움을 겪거나 이직을 고민하는 경우도 있다”며 “전문 인력 확보와 질 높은 서비스 제공을 위해 정서 및 죽음에 대한 교육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협회장은 “현재 호스피스·완화의료 교육은 복지보다 치료 중심으로 치우쳐져 있다”며 “완화의료가 단순히 치료·처치의 개념이 아니라 환자의 복지를 위한 제도임을 일깨울 수 있도록 교육과정 개편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일례로 미국은 호스피스·완화의료 교육 프로그램인 ‘End-of-Life Nursing Education Consortium’(ELNEC)을 통해 ‘고인의 돌봄과 가족의 애도’(bereavement)를 포함한 정서적·심리적 돌봄 내용을 커리큘럼 일부로 명시하고 있다.
최 협회장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고통 없이 마지막을 마주할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모두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제도의 허점과 수가의 한계는 여전히 많은 이들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주지 못하고 있다. 누구나 호스피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사회 전체가 호스피스·완화의료의 무게를 함께 짊어져야 한다.
글·사진 오규민 기자
socio_gamja@yonsei.ac.kr
김태은 기자
socio_mari@yonsei.ac.kr
<사진제공 한국호스피스완화간호사회>
출처 : https://chunchu.yonsei.ac.kr/news/articleView.html?idxno=32488